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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ol
 안녕?   일상
조회: 2603 , 2017-05-17 22:24
오랫동안 일기를 쓰지 못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오랫동안 공개일기를 쓰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기다리는 밝은 일기를 쓸 자신이 없었거든요.
일기란 것이 보통 즐거울 때보다는 힘들 때 쓰게 될 때가 많게 마련이잖아요.
오늘의 일기는 그닥 밝은 일기도 어두운 일기도 아니지만,
조금 바랜 그치만 따뜻한 빛이 내리쬘 것만 같은 그런 일기라고 해두고 싶어요. 

잠깐 한국에 다녀왔습니다. 

한국의 하늘은 더이상 내가 알던 하늘색이 아니더군요.
미세먼지와 황사로 회색의 우중충한 하늘만 보고 자란 우리 아이들 사전에 더 이상 푸르른 하늘색이 존재하지 않게 되어버릴까봐 겁이 나더군요.

잘 쉬고 잘 먹고 오려고 했는데 
장염에 걸려 여섯번 토하고 다음날 링겔 두 통을 맞고 죽만 먹다가 돌아왔습니다. 
친구와 한가롭게 서점에 들러 책을 사고 카페에 앉아서 수다를 떠는 대신
마스크를 쓰고 병원만 왔다갔다 하다가 다시 이곳에 돌아왔습니다. 

계획했던 것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돌아왔는데 
그런데 정말 어찌된 일인지 조금 괜찮아 졌습니다. 

나는 역마살이 끼어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사는게 맞는 체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향수병 이었던 모양이에요. 

매연가득한 도시에서 제대로 쉬지도 먹지도 못하고 아프다 왔는데 이렇게 마음이 괜찮아 진걸 보면 말이에요. 

돌아오니 다시 이곳의 파란 하늘이 예뻐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재미없었던 드라마도 다시 재밌어졌고요,
한국에서 맛없었던 쌀밥에 김치도 맛있습니다. 

다시 돌아왔을 때 조금 슬펐던 것은 사실이에요.
공항에 데려다 주겠다는 부모님을 만류하고 
공항버스 터미널에서 훌쩍거리면서 부모님과 또 다시 작별하고
혼자 공항에 도착해 익숙하게 티켓팅을 하고
라운지에서 그림의 떡같은 음식들을 바라만 보며 스프만 홀짝거리다가
단체 관광객들과 우는 아이들 사이에서 혼자 열두시간의 비행을 견디고
또 비행기에서 내려서 아무도 피켓들고 반겨주지 않는 공항을 빠져나와
혼자 캐리어를 끌고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로 와서 
다시 버스를 타고,
이곳에서 내가 살던 텅 빈 집에 돌아왔을 땐...
또 다시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 했어요. 

또 다시 혼자구나. 

그런데 뭐 어때요.
완벽하게 혼자일 수도 완벽하게 함께일 수도 없는게 인생인걸요. 

그냥 다시 힘을 내보기로 했어요.
정말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힘들 일도 언젠가는 끝날 거라는 걸 아니까요.
그리고 더 어이없게도 그 힘든 일이 끝나면 또 다른 힘든 일이 다가올거라는 것도 알고 있는걸요. 

정말 신기한건 더 이상 떨어질 바닥이 없을 것 같아도 또 떨어질 나락이 있다는 거에요. 

그냥 슬픈일도 기쁜일도 그렇게 함께 있는 건데
왜 그렇게 맘껏 슬퍼하지도 기뻐하지도 못했던 건지...

이제 그만 바닥 치고 올라올 때를 기다리지 않고 
그냥 힘을 내어 조금씩 올라가볼래요. 

충분히 방황했고 충분히 힘들었다...

힘든 가운데 그래도 조금 공감도 하고 조금 웃을 수도 있는,
소설처럼 재밌는, 단비같은 당신의 일기가 곧 올라오기를 기다려봅니다. 







통암기법   17.05.19

뿌연하늘에 단비같은 일기 같아요...

carol   17.05.21

고마워요^-^ 뿌연하늘에 단비같은 댓글이에요.

B   17.05.22

완벽하게 혼자일 수도 완벽하게 함께일 수도 없다는 말 진짜 공감돼요. 날이 갈수록...그래도 잠시라도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또 혼자임에 감사하고 그러네요~^^

carol   17.05.25

감사하는 그 마음 본받고 싶어요^-^ 감사하자 감사하자 마음먹어도 금새 또 툴툴거리게 되더라고요,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