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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일기글입니다.
 하지  
조회: 483 , 2019-06-23 00:48



저녁을 때우러 편의점에 가는 길이었다.
밖은 아직 밝았다.
해는 보이지 않는 지평선에 가깝거나, 어쩌면 이미 지평선을 넘어가고 있는지도 몰랐지만
자주빛에 가깝고, 커다란 구름의 주위로는 어딘가 노랗거나 오히려 창백한 빛이 돌던 하늘은 
여덟 시라고 하기엔 분명히 밝았다.
등 뒤에서는 야구장으로부터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멜로디는 익숙했지만, 개사된 가사는 불분명했고, 원래 가사는 기억나지 않았다.
넓지 않은 길의 양옆으로는, 늘 차들이 잔뜩 주차되어 있다.
낮은 빌라와 다세대 주택들을 지나며,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날 때 지구상에 벌어질 일 대신,
의자를 뒤로 옮기며 노을을 보던 어린 왕자를 생각했다.
적당히 게을러 집에 밥이 없는 것이
편의점으로 가는 길이 서쪽으로 뻗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며칠 전에 꾼 길몽이 그저 이것이라도 충분했다.
그 노을과 미적지근한 바람으로, 적당히 쓸쓸하고 적당히 애틋한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