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라이프> - 이동진 영화리뷰 │ 공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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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읽어주는 남자관객들의 관심은 새로 상영되는 개봉작에 집중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흘러가버린 영화들 중에서도 그냥 묻혀버리기엔 아까운 좋은 작품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 영화들을 찾아서 상세한 사진들과 함께 해설하는 새 시리즈 ‘영화 읽어주는 남자’를 시작합니다. 이 시리즈는 영화의 최종 결말까지 묘사한다는 것을 미리 밝힙니다. * Text 이동진 /* 구성_네이버 영화 좋은 영화의 역할-‘원더풀 라이프’ (1)좋은 영화란 어떤 영화일까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는 이렇게 답하곤 합니다. “해답 대신 질문을 던져주는 영화”라고요. 그렇게 말할 때면 제 머리 속에 저절로 떠오르는 영화가 한 편 있습니다. 바로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원더풀 라이프’(1998년)입니다. 저는 이 영화의 제목만 떠올려도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곤 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환상의 빛’(1996년)으로 첫 장편 극영화를 만든 뒤 ‘원더풀 라이프’ ‘디스턴스’ ‘아무도 모른다’ ‘하나’를 연이어 내놓았습니다. 이중 국내에선 ‘원더풀 라이프’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하나’가 정식 개봉되었지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 중 작년에 나온 ‘하나’만 보신 분들께는 꼭 그의 다른 영화를 챙겨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하나’는 그의 영화 세계에서 무척 이질적이면서 상대적으로 처지는 작품이거든요. 그래도 제 사무실엔 ‘하나’의 포스터가 있습니다. 그의 사인을 받아놓은 포스터라서요.^^;;)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다큐멘터리로 시작한 감독입니다. 그래서 그의 영화들은 실화에서 소재를 얻거나 다큐멘터리적인 방식을 차용하는 경우가 많지요. 카메라워크에서 편집까지, 작품마다 서로 다른 형식을 보여주는 그의 영화세계는 언제나 디디고 선 자리를 고민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자의 서성이는 발자국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과 상실의 테마는 그의 작품들에서 늘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요. 자세한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우선 영화 속으로 발을 들여놓아 볼까요? 짤막한 프롤로그가 지나고 나면,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열린 문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옵니다. 이제 막 죽은 사람이 이승과 저승 사이에 있는 이 세계에 잠시 머물기 위해 들어오는 거지요. ‘원더풀 라이프’는 바로 그 세계에서 일주일간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때는 월요일 새벽.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에서 빛과 어둠이 교대하는 박명(薄明)의 시간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위의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명과 암의 대비지요.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표현하고 있는 저 문 안팎의 빛과 어둠은 곧 삶과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죽음은 결코 음울하지 않습니다. 화면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눈부신 빛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건물 내부의 어둠이듯, 여기서 죽음은 삶을 가능케 하고 또 완성케 하는 것이니까요. 저 문으로 걸어 들어오는 인물들은 압도적인 빛 때문에 실루엣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빛과 어둠의 경계 속에서 실루엣이 된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삶을 통째로 복기하기 시작합니다. 대체 왜 그래야 하느냐고요? 그건 이 세계의 규칙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입소식을 마친 할머니 한 분이 그녀의 선택 과정에서 도움을 줄 이 세계의 두 직원 모치즈키와 시오리 앞으로 걸어옵니다. 이곳에 일주일간 머무르는 동안 사람들은 자신의 지나온 삶 전체를 돌아보며 가장 행복했던 기억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이 선택한 그 기억 하나만 가지고서 다음 세상으로 넘어가 영원히 그 기억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거지요. “당신은 어제 돌아가셨습니다. 명복을 빕니다”는 말로 시작해서 이 세계에 머무는 동안 해야 할 선택에 대해 설명해주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는 할머니의 표정이 진지하죠? 이 할머니를 비롯해서, 이 영화에 출연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아마추어 배우들입니다. 이 영화를 찍기 전에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실제로 “당신 삶에서 단 하나의 행복한 기억을 선택한다면?”이란 질문을 무려 500여명의 사람들에게 인터뷰하면서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때 인터뷰 대상이 됐던 사람들 중 일부가 바로 이 영화에 그대로 출연하게 된 거지요. 이 할머니도 그렇고요. 말하자면 이 분들은 극영화 ‘원더풀 라이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연기하고 있다고 할까요. 이는 다큐멘터리로 영화 경력을 시작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독특한 방법론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이 영화는 극화된 연기만으로는 얻기 힘든 생생한 질감의 감동을 담아낼 수 있었지요. 이 소녀는 직원들의 설명을 듣자마자 선택을 합니다. 도쿄 디즈니랜드에 가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던 일을 고른 거지요. 우리나라의 아이들도 비슷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바로 앞 할머니 장면과 이 소녀의 장면에서 짐작되듯, 이 영화 전반부의 상당 부분은 정면의 고정 카메라에 인물의 상반신을 담는 미디엄 쇼트로 촬영되었습니다. 카메라의 시선이 주로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인물들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흡사 인터뷰 현장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지요. 이 여자는 아이를 낳던 경험을 선택했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경험이지만, 그만큼 보람 있는 일은 없었다는 거지요. “고통이라는 것을 잊는 능력이 인간에게 없었다면, 아마도 형제라는 게 없었을지도 몰라요”라고 덧붙이면서요. 몇 년 전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만나보는 인터뷰 시리즈를 담당했을 때, 저는 마지막 질문을 이 영화에서 고스란히 따와서 “당신의 가장 행복한 기억을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분은 자전거를 처음 배워서 비탈길을 내려갔던 순간을 집어냈고, 어떤 분은 출장 가서 아내가 옷섶에 넣어둔 편지를 읽어보았을 때를 골랐으며, 어떤 분은 콩쿠르 전날 밤에 꾸었던 황홀한 꿈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분은 바로 첫 아이를 낳던 경험을 회상했습니다. 인터뷰하면서 그 분의 말씀을 듣는 순간, 제 머리 속에는 ‘원더풀 라이프’에서 보았던 위의 장면 속 여자의 얼굴이 고스란히 떠오르더군요. 그러나 야마모토라는 이 남자는 “내 인생 자체를 돌아보고 싶지 않다”고 눈을 감고 말합니다. 그에겐 불행으로 점철된 삶을 회상하는 것 자체가 아픔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이 장면을 포함해 이 영화의 전반부 상당 부분은 고정 카메라의 정면 미디엄 쇼트로 찍혀져 있습니다. 꿈쩍도 않는 카메라와 삶을 회상하는 사람들의 말을 천천히 차곡차곡 이어붙이는 편집 때문에 관객들은 초반부에 조금 갑갑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곧 이 영화만의 리듬에 익숙해지면서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의 움직임 원칙은 단순하고도 명백합니다. 인물이 움직이지 않으면 카메라가 움직이지 않고, 인물이 움직이면 카메라도 따라서 움직인다는 것이지요. 인위적인 스타일을 배격하는 이 영화의 형식은 일견 심심해 보이지만, 결국 깊은 울림을 얻어냅니다. 때론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많은 것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 이세야라는 이름의 이 친구, 벌써 자세부터 삐딱하지요? 야마모토처럼 이 친구도 선택을 거부합니다. 하지만 스무살의 그는 자신의 불행한 삶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닙니다. 표정에서부터 반항기가 가득한 그는 “왜 꼭 선택을 해야 하느냐”고 뻗대서 직원들을 애먹입니다. 일반인들의 인터뷰를 영화 중간중간 삽입해나가는 작품으로 ‘원더풀 라이프’가 유일한 것은 아닙니다. 워런 비티의 ‘레즈’나 로브 라이너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도 그랬지요. 한국영화로는 변혁 감독의 ‘인터뷰’가 있었고요. 하지만 ‘레즈’가 전기 영화에 입체감을 주기 위해서 그랬고,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나 ‘인터뷰’가 극중 남녀 주인공의 연애를 사랑에 대한 일반론으로 확대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그렇게 했던 것에 비해, ‘원더풀 라이프’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앞의 영화들에서 인터뷰 장면들이 수단에 해당한다면, ‘원더풀 라이프’에선 그것 자체가 오히려 목적에 가깝다고 할까요. 이 영화는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회상하는 내용 하나하나가 그 핵심을 이루고 있으니까요. 이 할머니는 알츠하이머 환자입니다. 그래서 직원이 질문을 반복해도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멀뚱멀뚱 창문 밖만 바라봅니다. 민망해진 직원 가와시마도 그 시선을 따라 창밖을 바라보지만, 거기에 뭔가가 있을 리 없지요.^^ 이 영화는 이런 안온한 유머도 놓치지 않습니다. 사실 유머에는 우월감이나 적대감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의 유머는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말 기분 좋은 웃음을 선사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원더풀 라이프’를 만들기 2년 전, 의료 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한 남자를 다룬 다큐멘터리 ‘기억 없이’를 찍은 적이 있습니다. 그 남자를 촬영하면서 그가 느꼈던 것들이 아마도 ‘원더풀 라이프’를 만들게 한 하나의 동인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게 제 추측입니다. 여주인공인 직원 시오리가 차 두 잔을 들고 복도를 걸어갑니다. ‘원더풀 라이프’에서 빛과 어둠의 대비가 무척 중요하다는 점은 이미 말씀드렸지요? 이 장면에서 짐작하실 수 있듯, 건물 내부의 복도나 방을 잡을 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햇살의 방향과 질감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복도 장면은 인물이 걸어가거나 혹은 텅 빈 그대로 극중에서 자주 인서트 되는데, 이는 이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일종의 쉼표 같은 역할을 합니다. 동시에 통로라는 그 속성 때문에, 복도는 그 자체로 이전 삶과 다음 삶을 연결하는 이 세계의 교량적 상태를 시각적으로 계속 환기시키는 구실도 하지요. 시오리가 차 두 잔을 들고 간 곳은 일찌감치 디즈니랜드의 경험을 선택한 소녀 곁입니다. 야외 장면에서조차 빛이 비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명확히 대비되고 있지요? 거기서 시오리는 소녀에게 “올해만도 디즈니랜드를 선택한 여자 애가 벌써 삼십 명”이라고 말해줍니다. 그 말에 놀라 소녀는 손을 가슴에 얹고 “그게 정말이냐”며 되묻습니다. 누구라도 남들과 똑 같은 기억을 단 하나의 추억으로 선택하긴 싫을 테니까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500여명을 인터뷰했을 때, 실제 그런 대답이 많았다고 하네요. 미소를 자아내게 만드는 이 부분은, 말하자면, 직접 발로 뛰어서 얻어낸 유머라고 할까요. 다음날. 알츠하이머에 걸린 이 할머니는 가와시마 앞에서 아무 말 없이 아침에 주워온 나뭇잎과 도토리를 꺼내 늘어놓습니다. 이틀 동안 관찰했던 가와시마는 스스로를 아홉살로 생각하는 이 할머니가 이미 살아 있을 때 기억을 선택한 경우라고 결론짓습니다. 이 영화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거나 회고할 때, 인물들의 뒤에는 주로 햇빛이 비치는 밝은 창문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라디에이터까지 놓여 있지요. 계절은 겨울. 모든 삶의 배후에 빛과 열을 두고 싶어하는 감독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어린 시절 너무나 사랑했던 할아버지가 알츠하이머에 걸려 가족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술회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할아버지를 제대로 돌봐드리지 못했던 자신에 대해 죄책감도 느꼈다지요. 아마도 ‘원더풀 라이프’에서 이 할머니를 이처럼 곱게 묘사한 것은 감독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때로 영화는 스스로와 화해하는 의식 같은 것이니까요. 이 영화의 주인공인 모치즈키가 자신이 맡은 사람들에 대해 브리핑을 합니다. 월요일에 여기로 온 사람들이 수요일까지 자신의 추억을 선택하는 동안, 직원들은 저녁마다 회의실에 모여 경과 내용을 서로 의논하는 거지요. 이 세계로 갓 들어온 사람들이 삶을 돌아보는 낮의 장면들이 밝은 톤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비해서, 이미 이 세계 속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직원들만 나오는 밤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어둠을 짙게 깔아놓아 공간적 배경이 없어진 채 인물만 동동 뜬 것 같은 느낌으로 표현됩니다. ‘원더풀 라이프’는 고졸하고 소박하며 평화로운 느낌이 전편에 흐르는 작품입니다. 그런 느낌을 위해 제작진은 소품까지 세심하게 챙겼습니다. 위의 장면에서 볼 수 있듯, 구형 스탠드가 대표적이지요. 직원들은 사람들의 사연을 컴퓨터가 아니라 갱지에 기록하고, 동영상이 아니라 슬라이드 사진을 활용합니다. 전화기도 다이얼을 손가락으로 돌려야 하는 검정색 구식 전화기지요. 아마도 할리우드가 이 소재를 영화화했다면, 이 작품과는 전혀 다른 비주얼로 표현했을 것 같습니다. (실제 에이미 헤커링이 연출을 맡게 된다는 할리우드 리메이크 버전 뉴스를 오래 전에 접했었는데, 현재까지 아무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무산되고 만 것 같네요. -.-) 화려한 색감을 살려 사후 세계를 그려냈던 ‘천국보다 아름다운’처럼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특수효과를 동원한다고 해도 ‘원더풀 라이프’의 수공업적인 제작방식과 미술이 지닌 진솔한 감동은 재현하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건 장소도 마찬가집니다. 이 영화는 실제 학교 건물을 빌려서 찍었습니다. 낡은 3층 교사(校舍)에서가 아니라 세트를 짓고 찍었다면, ‘원더풀 라이프’ 특유의 사실적이고도 따뜻한 느낌을 자아낼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학교라는 촬영지는 이 영화의 상황과 절묘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인물들이 이곳에 일주일간 머물면서 지나온 시간을 회상하다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배우면서 변화하게 되는 과정을 담아내는데는 학교만한 장소가 없을 테니까요. 벌써 수요일. 직원들은 토요일에 있을 퇴소식에서 연주할 음악을 연습합니다. 떠나갈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해 합주곡을 연습해보는 선한 마음. 바로 이 영화가 삶 자체를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이 할머니는 어린 시절 빨간 구두와 빨간 원피스를 입고서 춤을 췄던 순간을 선택했습니다. 그 시절을 회상하며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손을 들고서 동작을 취해보는 할머니의 웃음은, 정말이지, 이 영화에서 가장 뭉클한 순간을 만들어냅니다. 78년의 세월을 어떻게 살아오셨는지가 그대로 응축되어 있는 웃음이라고 할까요. 타타라 키미코라는 이름의 이 할머니는 다른 많은 조연들처럼 연기 경험이 전무한 분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인터뷰를 했다가 캐스팅이 되어 영화 속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시고 있는 거지요. 제가 ‘원더풀 라이프’를 처음 보았던 것은 미국의 선댄스 영화제에 취재를 갔었을 때였습니다. 영화를 본 후 큰 감동을 받아 그 직후에 열린 ‘관객과의 대화’ 행사 때까지 자리를 지켰지요. 그 행사에서 마이크를 잡은 첫 관객 역시 곱게 늙은 백인 할머니였습니다. 그 할머니 관객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게 “타타라 키미코씨는 이제껏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라면서 “이런 분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게 해준 감독께 감사드린다”며 동양식으로 몸을 굽혀 정중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면서 제가 눈물을 흘린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러닝 타임이 45분 흐른 뒤에 등장하는 이 장면은 아마도 이 영화에서 형식적으로 가장 중요한 쇼트일 겁니다. 어두운 과거 때문에 선택 자체를 거부했던 야마모토는 이 장면에서 “하나를 골라서 그것만 기억할 수 있게 된다면, 나머지 기억은 전부 다 잊을 수 있다는 건가요?”라고 물으며 “그렇다면 정말 천국이겠군요”라고 덧붙입니다. 야마모토가 직원인 모치즈키와 시오리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질 때, 카메라는 야마모토의 뒷모습을 중앙에 두고서 두 주인공의 정면 얼굴을 양쪽으로 비추는 앵글을 구사합니다. ‘원더풀 라이프’가 그때까지 인위적인 카메라 앵글을 철저히 배제해왔다는 것을 상기할 때, 이 쇼트가 끌어내는 시각적 효과는 무척이나 강렬하지요. 이 쇼트는 이 영화의 앞 부분과 뒷 부분을 나누는 명확한 분기점이 됩니다. 그 전까지 이 세계에 찾아와 일주일을 머물게 된 사람들의 회고를 주로 경청하며 따라가던 영화는 이 선언적인 쇼트 이후에 급격히 흐름을 바꿔서 그들의 말을 듣기만 했던 직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풀어내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이 장면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교대하는 순간인 것이지요. 그리고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 이제껏 직원들의 위치에서 이야기를 듣던 관객 역시 이 쇼트에서 180도로 방향을 바꾸는 카메라 앵글로 인해, 자신의 삶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는 셈입니다. 결국 이 인위적이고 표현적인 쇼트는 강력한 질문을 제대로 던지기 위한 장면인 셈입니다. 앞의 장면 이후엔 본격적으로 모치즈키의 사연이 펼쳐집니다. 담당하고 있는 와타나베라는 노인이 선택에 어려움을 겪자, 모치즈키는 와타나베의 삶이 요약된 비디오 테이프 70개를 그에게 가져다줍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처음 만나 인터뷰했을 때, “이 영화를 구상하게 된 최초의 이미지는 무엇이었습니까”라고 질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전에 방송국에서 일할 때 현장에서 찍어온 비디오 테이프가 편집실에 쌓여 있는 것을 보면서 “내가 만일 마흔 살에 죽게 됐고, 내 삶이 담긴 마흔 개의 테이프가 저렇게 쌓여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던 게 시초였다고 답하더군요. 위의 사진은 바로 그 최초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잠시 함께 비디오를 보던 모치즈키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집니다. 그건 화면 속에서 누군가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쇼트는 ‘원더풀 라이프’에 등장하는 최초의 클로즈업이지요. 야마모토가 역으로 질문할 때 180도로 돌아간 앵글이 그렇듯, 이 쇼트 역시 이전에 한 번도 클로즈업을 쓴 적이 없었기에 강력한 표현력을 지니게 됩니다. 특정 테크닉을 반복해서 쓰면 정작 필요한 곳에서 의도된 느낌을 얻어내기가 힘들다는 점에서, 영화에서 효과라는 것의 핵심은 결국 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안 쓰는 데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모치즈키가 모니터에서 본 사람은 와타나베의 부인인 교코. 바로 자신의 약혼녀였던 여자였습니다. 모치즈키는 그녀와 약혼했던 상태에서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던 거지요. 교코는 모치즈키를 잃은 후 새로 와타나베를 만나 결혼하게 된 것이고요. 스물셋에 일찍 죽어서 그렇지, 모치즈키는 와타나베보다 세 살이나 많은 나이였던 거지요. 모니터 속의 교코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모치즈키. 이 쇼트 역시 이제껏 등장하지 않았던 앵글로 인물을 잡아냄으로써 그 내면을 선명하게 스케치하고 있습니다. 교코와 와타나베의 관계를 알아보게 된 모치즈키가 와타나베에게 던지는 첫 질문은 “행복하셨습니까”였습니다. 모치즈키를 포함해, 그 세계의 직원들은 전부 단 하나의 기억을 고르지 못해서 선택하게 될 때까지 남아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 직원들의 사연이 하나씩 풀려나오기 시작합니다. 알츠하이머 할머니를 담당하는 가와시마는 창가에서 낡은 사진을 꺼내듭니다. 거기엔 사랑스런 어린 딸의 모습이 있습니다. 가와시마가 직원으로 남게 된 이유는 딱 한 가지. “딸이 스무살 될 때까지는 지켜봐야 하는 게 아빠의 도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디즈니랜드에서의 하루를 골랐던 소녀는 뒤늦게 결정을 번복하고 시오리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소녀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세 살 때, 엄마가 무릎에 자신을 눕히고 귓밥을 파주던 추억이었습니다. 소녀는 자신의 볼에 닿던 엄마의 무릎 감촉과 그때의 엄마 냄새까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지요. 뭔가 심상찮은 조짐을 느끼고 모치즈키의 방으로 간 시오리. 그러나 그곳에 모치즈키는 없습니다. 모치즈키를 사랑하고 있는 시오리로선 불안해지지 않을 수 없지요. 이 장면은 문을 열고 텅 빈 방 안을 들여다보는 시오리의 뒷모습을 비춤으로써 답답해진 그녀의 상황을 암시합니다. 생생하게 떠오른 과거 때문에 상념에 빠진 모치즈키는 복도를 걷다가 문득 위를 올려다봅니다. 그곳엔 반달이 떠 있습니다. 반달은 남의 추억과 자신의 추억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모치즈키의 심리를 그대로 담아냅니다. 그리고 그 달빛은 한 밤의 어두운 복도처럼 묻혀 있던 모치즈키의 과거에서 새삼스럽게 빛을 내게 된 교코의 추억을 은유합니다. 어느새 모치즈키를 발견한 시오리도 바로 옆에 서서 달을 올려다봅니다. 사랑은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했던가요. 그러나 곧 고개를 떨군 두 사람은 말없이 걸음을 재촉합니다. 그런 둘의 현재는 달빛을 벗어나 복도의 어둠 속에 완전히 묻혀 있지요. 그건 모치즈키와 시오리의 관계에 드리우게 된 어두운 그림자인 셈입니다. 결국 모치즈키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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