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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하나
 지워지는 글, sunset님께   trois.
조회: 2649 , 2013-03-19 21:16


가끔씩 모바일로 글을 읽고
컴퓨터로 다시 들어오면
글이나 댓글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댓글이나 답글을 달아야지,
하고 다시 들어와서 없으면
뭔가 굉장히 허전하고 아쉽다.

그런 의미에서
sunset님께.


댓글 잘 읽었습니다.
'나한테 그 행동이 필요했다'
정말 많이 공감하는 부분이에요.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든,
어떤 반응을 보이든
어쨌든 나는 그 일을 해야만 속이 시원한 거죠.

제가 전 남자친구하고 헤어질 때 
그런 행동을 하나 했거든요.
저는 전 남자친구하고 편하게 대화를 할 수가 없었어요.
언제나 조금 걷도는 느낌?
늘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하기가 불편해서 삼키기만 했죠.

그런데 
헤어지기로 결심한 날
그러니까 
헤어지기 전 날 
서점에 갔는데
어떤 책을 보니까
문득 오빠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리고 뭔가 기분이 묘해졌어요.
그러고보니 나,
매일 책을 읽고
책을 사면서
한 번도 오빠에게 책을 선물한 적은 없었네,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그 책을 샀어요.
오빠에게 주려고.
헤어지는 마당에.
웃기죠? 

고민도 했어요.
아 이걸 주는 게 맞는 건가.
웃긴 거 아닌가.
기분 나빠하지는 않을까.
그런데 묘하게 그런 기분이 드는 거예요.
이거 안 주면 
분명히 후회할 것 같다,
하는 그런 기분.

그래서 그 책을 사고
집에 와서 편지를 썼어요.
웃기는 일이죠.
상대방 입장에서는 더 웃길 노릇이죠.
헤어지는 마당에 편지라니,
이 여자애 지금 뭐하는 건가.
하지만 저는 아랑곳 않고 썼어요.
이번 한 번만 내가 하고 싶다는 대로 해주자.
그리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그 편지에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썼어요. 
오빠가 성격이 많이 어른스러웠어요.
어딜 가나 어른스럽고 듬직하게 행동했어요.
그래서인지 제가 힘들어하는 걸 
잘 못더라구요.
늘 어서 힘내라고 하고, 
울면 울지 말라고 하고.
저는 그 말을 들을 당시에는 
오빠가 밉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했지만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면
아, 결국 오빠가 자기 자신에게 늘 하는 말이겠구나 싶어서
조금 안쓰럽기도 했어요.
장남이고, 남자이고 하니
늘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했어야 했나봐요.
그래서 그 경직된 어깨를 조금 풀어주고 싶었는데,
결국은 그렇게 못 하고 헤어지는 게 너무너무 아쉬웠어요.

그래서,
가끔은 울어도 좋다고.
우는 게 약한 건 아니라고.
힘들어도 된다고.
힘든 게 무조건 나약한 것만은 아니라고.
그렇게 혼자 버티고 끙끙대지 말고
조금 내려놓는 게 어떻겠냐고.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어쨌든 나는 저 말을 꼭 해주고 싶었고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기에
내뱉어버린 거죠.

그리고 한 가지 더 얘기했어요.
저보다 나이가 많았던 오빠는
진로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어요.
이미 선택한 진로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죠.
사실 제 눈엔 선택한 진로를 그닥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았어요.
그냥 그것으로 길을 정했고
순서에 따라 하나하나 밟아가는 것처럼 보였을 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은 
정말 잘 어울렸어요.
그 일을 이야기할 때면 좋아하는 것이 정말 느껴졌구요.
늘 좋아하는 일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나보다 나이도 많은데다가
나와는 달리 이미 취업이 목전으로 다가온 오빠에게
그런 말을 하기가 조심스러웠죠.
그래서 못했는데,
그 말을 못하면 후회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 말도 했어요.
꼭 지금 가고 있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더라도,
그 길을 가면서
다른 길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두었으면 좋겠다고.
이것저것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잘 어울린다고.

그렇게 하고
전해주고 나니까
속이 후련한게
제 안에 아무것도 남아있질 않더라구요.
물론 주기도 멋쩍었고
민망했지만
갈수록 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온갖 후회들로 괴로운데
그거까지 안 줬으면 그것만큼 괴로웠을 거니까요.


언젠가 또 뵈요:)

李하나   13.03.20

결과를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다면- 중요한 말씀이예요. 하고 싶은 일을 하되, 결과를 책임져야겠지요. 사실 울다에 제 글을 올린 것도, 그 '책임'이 어느 정도일까, 를 예측해보고 싶어서였어요. 사실 저 혼자서는 모르잖아요. 이 편지와 이 편지를 보내는 게 어떤 의미일까, 어떤 반응이 돌아올까, 등등. 제가 할 수 없는 생각들을 듣고 싶었어요.
결과적으로 여러 측면을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하지만 아직 보낼 거라는 판단은 서지 않았어요. 보내고 싶긴 하지만, 보냈을 때 내가 져야 하는 책임의 정도가 확실치가 않아요. 확실히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이에요. 일단 썼다는 것만으로 속이 많이 풀렸으니, 정말로 보내고 싶은 지 두고두고 생각을 해보려구요. 가능하다면 복사해서 상담 선생님께도 보여드리고 의견을 들어보구요.
sunset님의 말씀이 많이 도움이 되었어요. 제가 편지를 보내려는 의도를 정확히 이해해주셔서, 정말 감격스러웠답니다(눈물) 자주뵈요:)

李하나   13.03.20

안녕하세요, 느리게살자님:) '혼자서 결론을 내리시고 혼자서 끝맺으려 한다'의 의미와 '남자친구는 무슨 죄죠?'의 의미와 '왜 그 사람은 없을까요?'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제 글의 어떤 부분에서 그런 느낌을 받으셨는지, 구체적으로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건지. 아니면 제가 연애에 관해 썼던 글들을 모두 읽고 하시는 말씀인지, 궁금해요. 이 글만 보셨다면, 어째서 이런 결론이 났는지, 제 글이 그렇게 해석되었는지,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