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向月
  ..아니길 바란다.   지난 이야기
조회: 3472 , 2014-06-30 21:52
 CT를 찍는 날, 당신은 선 본 아가씨와 데이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오전 일찍 병원으로 가 접수를 하고
 내과 교수님과 상담을 하고, CT를 찍기 위해
 혈관을 찾는다며 이리저리 바늘을 쑤셔대는 간호사와 씨름을 했다.
 
 늘 그렇듯,
 혈관을 제대로 한번에 찾지 못한 채,
 여기저기 들쑤시고, 쇼크가 와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바늘을 꽂는다.
 조영제가 투입될거라, 바늘이 좀 굵단다.
 
 
 당신에게 메세지를 보낸다.
 - 병원왔어, 오늘 좋은시간되길 바라. 오늘은 더 연락 안할게.
 당신은 곧장 답을 한다.
 - 아냐. 해. 걱정되니까. 궁금하니까, 알았지?


 10분정도 기다리다 CT실로 들어갔다.
 예전에 MRI를 한번 찍은 적이 있는데 (편두통이 너무 심하여, 뇌혈관에 문제가 있나해서;)
 기억이 가물가물.. 신기해하며 두리번 거리는데
 누우란다. 시키는대로 팔도 들고, 만세를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가 참으라는 말에도 다 따라했다.
 조영제가 투입되고 몽롱할 거라는 말에
 음.. 했더니- 정말, 손끝 발끝까지 열이 나고, 정신을 잃을 뻔했다.



 복부CT를 마치고 다시 30분정도를 기다렸다가 내과 교수님을 만났다.
 
 여기 보이죠..
 어디?
 췌장은 원래 잘 안 보입니다. 간이랑 십이지장 쪽에 가려서 뒷쪽에 있기때문에...
 음.. 여기 보시면 간은, 구역이라고 할까, 명확하게 라인이 보이는데 췌장은.. 이렇죠?
 잘 안 보이겠지만.. 여기... 동그란 부분.. 아시겠어요?
 




 



 나는 계속 울리는 당신의 전화를 받지 않고,
 그렇게 병원을 나와 점심을 먹으러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언제고, 당신과 꼭 함께 와서 밥 먹어야겠다고 다짐한 곳.
 이름도 긴, 맛은 좋았던 볶음밥류를 먹고서 후식으로 아이스티 한잔을 마시고서,
 시계를 바라봤다.
 당신과 그 선 본 여자가 만날 시간은 오후 3시라고 했다.
 2시 40분.

 집으로 들어가 낮잠을 한숨 잤다.
 그 사이 당신은 내게 메세지를 보냈다.
 - 저녁에 봐. 연락할께.
 
 훗, 하고 코웃음을 친다.
 저녁? 아가씨랑 3시에 만나서, 나랑 저녁엔 언제 만날 생각이신지..
 
 그래, 당신은 결혼을 꿈 꾼 사람이니까,
 선 본 아가씨를 한번 보고- 결혼할 순 없으니까 두번 만나보는거라고.
 영화보고 밥먹고, 뭐 그러겠지.. 했다.
 
 점심 먹은게 소화가 되지 않아, 소화제를 먹고 까스활명수를 털어넣는다.
 동네 한바퀴를 걷다가 승아네 카페로 들어가서 수다를 떨다가
 애플소다 한잔도 채 못 마시고 다시 일어났다.
 어느새 시간은 저녁 8시가 넘어가고 있다.
 도대체 니가 말한 저녁이 몇시인지.?
 
 밉다.
 그러면서,  죽기 전까진- 어쩌면, 혹시라도 - 당신에게 할 수 있는만큼 최선을 다하겠다,
 또 한번 다짐한다.
 그래, 내가 만약 죽고 없어지면, 넌 나 없이 못 살 정도로, 잊지 못할 정도로 만들어주마, 라는 오기?
 뭐 그런거.
 그래, 미운 것보다,
 아직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열배백배천배쯤은 더 큰 것 같다.

 
 오랜만에 혼자 노래방에 들어가 실컷 노래를 부르는데
 당신이 찾아왔다.
 아무 말 없이 앉아, 남은 시간동안 혼자 노래부르는 나를 지켜보다가 바라보다가.
 가자, 라며 일어서는 나를 따라 당신은 함께 걸었다.
 
 연락 안되서 걱정했잖아.
 좋았어? 어땠어?
 좋기는. 내가 이런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무 느낌도 없더라.
 왜? 새로운 사람 만나면 설레고 떨리고, 그래야 되는거 아닌가?
 전혀. 아무 느낌도 없고, 좋은 것도 없고. 무미건조한 그런거.
 푸.. 그런게 어딨어. 그럼 뭐했어, 지금껏?
 그냥 오후에 만나서 이리저리 드라이브 하다가 물회 먹고..
 뭐야, 드라이브 한다고 바닷가까지 간거야?
 뭐 어쩌다보니...
 그리고 영화보고, 커피 마시고 집에 데려다주고?
 그렇지 뭐.
 손도 안 잡았냐?
 손은 무슨. 나는 후각에 좀 예민한가봐.
 무슨 말이야, 갑자기.
 사람한테 나는 냄새. 음 향기라는게 있잖아. 향수를 쓰든 뭘 하든, 특유의 체취같은거.
 그런데?
 나는, 너한테 나는 향기가 좋거든.. 네 체취가 편안하고 좋고 그런데, 그사람은 아니더라고.
 
 나는 의아한 눈으로, 나한테 냄새나? 했더니 당신은 하하하하, 하고 박장대소를 한다.
 냄새가 아니라, 체취. 끌리는 향이 있다고. 옆에 있으면 안고싶고 좋고 편안하고 뭐 그런.
 아. 그래~ 그래서 좋았단거야, 싫었단거야.
 별로라고. 세번은 안 만나고 싶다.



 그제서야 나는 내 처지도 잊고 기분이 조금 풀어진다.
 내가 제일 좋지?
 너만한 여자 하나 더 있음 다 버리고 장가가겠다.
 나는 히죽 웃는다. 당신은 그런 내 머리를 쓰다듬고, 병원 이야기를 꺼낸다.

 나는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한다.
 점점 굳는 당신의 표정.
 수술해. 라고 입을 연다.
 수술한다고 들어가서 수술대 위에서 죽는 사람이 허다하대.
 그래도. 라며 단호한 표정을 짓는 당신에게 나는
 난 그렇게 죽고싶진 않아. 그냥, 하고싶은거 하고 좋은 거 보고, 이렇게 좋은사람하고 사랑하고
 좋은 거 먹고, 충분히 지내고.. 그러고싶어.
 다른 병원가서 다시 검사해봐. 오진일 수도 있잖아.
 응. 그럴까봐, 아산병원 예약해놨어...
 잘했다.. 잘했어.. 라며 당신은 나를 안는다.

 그냥, 좋은데가서 좋은공기 보고, 당신하고 이렇게 사랑하고, 맛난거 먹고.. 그러자.
 내일 어디갈까? 갓바위 가서 기도하고, 약수도 마시고, 염주팔찌도 새로사고..
 음, 삼겹살에 소주도 먹자!
 미쳤나! 술 안돼, 앞으로 육류도 안돼. 가서 버섯, 나물 요런거 산채비빔밥 먹어.
 치..
 바다갈까? 너 바다좋아하니까, 옷 챙겨가서 발도 담그고 그럴까?
 응응. 그리고 회 한접시에 소주 먹고!
 맞는다..





 뒤척이며 잠을 못 이루다가 깨어났다.
 발 담그고 닦을 수건과 티셔츠 하나와 반바지 하나를 챙겨들고
 작년 여름 함께 산 아쿠아슈즈를 신는다.
 감포 가자, 하며 운전하는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잘생겼어, 어쩜 이렇게 멋있지? 하는 내게 당신은 기분좋은듯 웃는다.
 운전하는 내내 옆에서 재잘거려주며, 과자도 한입씩 넣어주고 노래도 불러준다.
 
 바다에 도착해서, 트렁크 속에 들어있던 돗자리도 펴고 슬리퍼도 꺼내고
 바지를 걷어 발을 담근다.
 자갈에 발바닥이 아프다고 하자, 당신은, 몸이 많이 안 좋나보네.. 큰일이다며 걱정한다.
 괜찮아. 이것봐 너무 예뻐.
 깨끗한 물 속에 예쁜 자갈을 찾고 발 담그고 걷는다.
 당신은 내게 물을 뿌리고 나도 당신에게 물을 뿌리고 깔깔깔 웃는다.
 한참을 그러고 나서 깔아놓은 자리에 앉는다.
 
 좋다.. 그치?
 응.. 커플들 많네- 가족들도 많고.
 난 요즘 저렇게 행복해보이는 사람들이 부러워.. 좋겠다, 싶구.
 당신은 그런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저 사람들도 우리를 부러워할껄? 하더니 머리를 쓰다듬는다.
 히히.. 배고파, 밥먹으러 가.
 
 바다가 잘 보이는, 언제고 한번 들렀던 횟집에 들어간다.
 회 한접시와 소주 하나를 시켜놓고 당신은,
 한잔을 열잔처럼 마시라며, 더 안 준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한잔이 어떻게 열잔이 되냐고 반박하다가 잔소리를 듣고서 회 한점을 먹는다.
 평소보다 입이 많이 까끌하다. 깨작깨작 하고 있으니,
 밑반찬으로 나온 고구마와 물김치, 버섯구이 등을 계속 내 앞접시 위에 놓는다.
 이거라도 먹으라며. 빈속이면 더 안 좋으니, 버섯은 몸에 좋고, 김치도 소화 잘 되고.. 하면서
 나를 챙겨주는 당신을 바라보며 웃는다.
 아프니까 좋다, 당신이 이렇게 챙겨주구.
 헛소리한다. 그래서 아픈게 좋냐?! 하며 머리를 콩, 소리나게 때린다.
 
 마주보며 앉아있다가 당신은, 옆자리로 건너오라고 한다.
 냉큼 당신 옆으로 가 앉았다.
 바로 옆에서 당신은 내 손을 잡고, 좋다.. 좋다.. 연신 말한다.
 건강해야된다며, 그래야 오래오래 같이 있을 수 있다며 말한다.
 그런 당신을 바라보며 나는 웃는다.
 당신은 내게 입맞춤을 하고 나를 안는다.
 히히.. 나 오늘 되게 행복해. 요 근래들어 가장 행복해.
 이제 아무것도 신경 안쓰고, 그냥 너 낫는데만 신경쓸게. 너만 건강하면 돼.
 괜찮아, 다른사람 만나서, 선보고, 또 결혼하고 하는거.. 나 괜찮아.

 아무 말 없이 당신은 나를 바라보다가 볼에 입맞추고 이마에 입맞춘다.
 너를 늦게 찾아서, 너를 늦게 만난걸 후회한다.
 
 

 바닷가를 한참 더 걷고, 아이스크림 하나를 먹고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내내, 나는 노래하고 또 재잘재잘 떠들고 당신은 그런 나를 보며 웃으며 운전한다.
 승아네 가서 커피 한잔하구 들어가, 그냥 가면 섭섭할 것 같아.
 당신이 먼저 승아네로 가자고 말한다.
 피곤한지 계속 하품을 하면서도 당신은 내 옆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음료는 앞으로 따뜻한 茶여야 한다고,
 혼자 와서 다른 음료를 시키면 그냥 허브티나 주라고 승아한테 말한다.
 앞으론, 술도 먹지말고, 좋은데 실컷 구경하고 다니자고.
 다음주엔 갓바위 갈까? 산에 갈까?  내 앞에서 당신이 재잘거린다.
 




 내가. 만약,
 없어진다면... 당신 내 장례식장에 올꺼야..?
 
 고개를 젓는 당신을 바라본다.
 나는.. 만약, 내가 사라진다면,, 수목장 해달라구 할꺼야.
 어디, 은해사에?
 아니, 강원도 인제, 횡성.. 이런데. 자작나무로다가..
 너 한번 보러가는데 오래걸리겠다.
 
 보러오는 시간동안 내 생각할테고..
 보고 내려가는 그 오랜시간동안 또 내생각할꺼니까.
 



 나를 한참,
 오래도록 바라보던 당신 눈빛. 


 나는 내 마지막까지 당신과 함께한 예쁜 추억을 가지고 가고 싶다.



 

바나나우유처럼달콤한   14.06.30

하.....아니길 빌어요 정말로 ㅠ

向月   14.07.01

..아니길 바랬는데. 아닌게 아닌게되었네요ㅎ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HR-career   14.07.01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끼리 하는 게 아닌가요? 두분은 사랑하지 않나요?

向月   14.07.01

.. 아남카라님은 매번 까칠하셔ㅎ
사랑합니다. 사랑한다고해서 다 결혼하는것만은 아니죠.. 또 사랑해서, 헤어지지않는 사람들도 없구요-^^
제가... 많이 답답한가요? ^^

HR-career   14.07.01

그 남자는 너여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그 여자는 너여야만 좋지만, 아니라도 좋아하겠다.

向月   14.07.01

... 응. 맞아요.., 잔인해, 아남카라님.

HR-career   14.07.02

잔인할 정도의 명백한 현실에 직면해서 해결책을 찾아 해결하는 방법 만이 덮어두고 두려움에 떨면서 곪는 것보다 나아요.

원래는..
까칠하고 잔인한 성격이 아닌 제가 드릴 수 있는 아픈 말씀입니다.

向月   14.07.02

^^.. 시험은, 어떻게 되고있나요? 잘 준비하고 계신가요?
고마워요 ㅎㅎ.. 빨리 나아서 데이트해요ㅋ

HR-career   14.07.03

예 알겠습니다. 빨리 나으세요. 마무리 잘하도록 하겠습니다.
꼭 건강하셔야 되요.

에헿헿   14.07.01

두 분 마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기를 읽고나서 현실에 닥친 시련보다는 이 사랑이 아름다워서 슬퍼진달까요 정말로..

살다보면   14.07.01

어느날 갑자기 내 삶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참 덧 없네요... 아름다운 추억만 간직하고 싶은 마음... 조금은 알것 같아요... 그래도... 세상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들을 감추고 있다고 해요. 용기 내셔서 힘내시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PINK   14.07.02

내 기억속의 한장면 같네요.. 꿈에나 나올것 같았던 어렴풋한..
맘이 아프네요..

PINK   14.07.02

제발..아프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