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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
 큰 기대에 따르는 큰 실망   합니다.
조회: 955 , 2021-10-20 07:05

그의 이력서는 눈부시게 화려했다.
그러나 실제 일을 해보니 생각보다 너무나 느리고 어설펐다.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이력서를 살펴봤다.
내가 글을 제대로 읽은 건 맞다.
그렇다면, 내가 사람을 잘못 본건가.
아직 그의 능력을 평가하기엔 시기상조인가.

.

아니다. 아직도 내가 배우지 못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이력서를 10배 정도 부풀린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다.
우리 회사를 거쳐간 직원들도 어디가서는 엄청난 이력서를 들이밀겠지.

.


한 인간이 전재산을 털어서 배를 만들었다. 꿈에서 보물섬을 봤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 선주 겸 선장이 되어 항해를 시작했다. 꿈에서 봤던 그 보물섬을 찾아서....
큰 파도도 만나고,바다괴물도 잡아보고, 굶어도 보고, 크고 작은 보물도 건져보고,,,,,
그 여정 중에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타고 내렸다.
(누군가는 쫓겨나고, 누군가는 힘들어서 내리고 등)

그렇게 배에 잠깐 올랐다가 내린 사람들은 육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같이 엄청난 영웅담을 늘어놓는다.
마치 본인이 선주였고 선장이었고 항해사였고, 모든 경험을 최전선에서 했던 것처럼. 
(심지어 본인이 잘 때 벌어진 일이나, 본인이 승선하기 전에 있었던 일들도 다른 선원들에게 주워듣고 실제로 본 것처럼 이야기한다! (물론 얘기해준 선원도 누군가에게 주워들은 것))

영움담을 늘어놓는 사람 중 누군가는 실제로 배가 나아가는 데 도움을 줬고, 누군가는 그저 편승했고 또 누군가는 방해하다가 쫓겨났지만, 그들 모두의 입에서는 화려한 영웅담만이 나올뿐이다.
같은 시기에 그 배에 그 사람과 함께 있었던 사람이 아니고서야 누구도 그 사람의 허풍을 함부로 폄훼하지 못한다.

그가 없는 사실 자체를 지어낸 것은 아니지만, 맞는 말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경험은 그 자체로 별 의미가 없다. 경험을 통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시도를 했고, 어떤 배움을 얻었는가가 중요할뿐이다. 같은 경험을 했어도 몰입했던 사람들은 배울 것을 편승했던 사람들은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 경험에 기반한 배움과 성취로 인한 자신감이다.

그러나 육지 사람들이 뭘 알겠는가, 생생하게 경험담을 늘어놓는 그를 보며 상상으로 그의 아우라까지 그려줄 뿐.
대충 귓동냥한 것과 실제로 본 몇가지 장면을 생생하게 그려내면 영웅대접을 받을 수 있는데 그걸 마다할 인간이이 몇이나 될까. 솔직하게 '저는 그냥 돈 준다길래 이전 경력 속여서 배에 탄 다음 대강 시간 떼우다가, 왠지 실력이 뽀록날 것 같고, 더 힘든 여정을 떠날 것 같아서 슬쩍 내렸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정도 진실된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배에 타지 않던가, 이왕 탔으면 기여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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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내가 나이브한 인간일뿐이다. 
전문용어로 애송이.

이번에도 처음 보는 사람의 영웅담을 읽으며 상상을 했고, 그 상상에 근거해 기대를 했고, 실망을 하고 있다.
그 사람에게는 잘못이 없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스스로 일말의 죄책감도 없을것이다.
그저 눈 밝지 못한 내가 눈을 감고 상상을 했을뿐이다.
사람에 대한 기대를 많이 내려놓았는줄 알았는데, 아직 10년 전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그래도 내가 너무 단편적인 것만 보고 속단하는 것일수도 있으니 진짜 그가 경험한 것이 무엇인지 확인해보자.
평가의 기준을 부지런히 정비하며 다방면으로 기회를 줘보자. 
제대로 평가를 해서 결단을 내려도 늦지 않다.

상황이 급박하다고 마음까지 급해져서야 되겠는가.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일을 그르칠뿐이다.



















masterkey   21.10.20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