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대화 - 회피하지 않을 수 있도록 │ deux.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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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방금 다 읽은 책을 손맛을 위해 공(空)으로 넘기고 있는데 엄마가 페트병 하나를 품에 안고 내 방에 들어왔다. 누워있는 나를 보며 입을 뻐어끔뻐어끔 하더니 널부러져 있는 수건을 보며 왜 수건을 여기다 두었냔다. 왜 들어왔냐고 물었더니 다시 입을 뻐어끔뻐어끔 그러더니 책상 위에 있는 물통을 집어들며 이건 왜 또 여
냐고 괜히 내가 또 무슨 할 말이 있으냐 물었더니 무슨 말 하려고 하는 지 알지 않느냐길래 짐작이 가는 것을 물어보았다. . . 같이 상담소에 가는 문제, 엄마가 관심을 보였다. 언제 한 번 같이 가보자고. 언제 갈 거냐고. 딱히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내가 좋았던 건 엄마와의 대화로부터 내가 도망친 거리가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점 이었다. . . 나는 항상 불편한 주제 불편한 상황 불편한 느낌으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도망치는 방법을 택했다. 고개를 돌리고 대답을 하지 않거나 '몰라'로 일관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성질을 내기도 하고 화제를 돌리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나는 내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것들 대면하고 싶지 않은 것들로부터 도망치며 살아왔다.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그러지 않고 싶어졌다. 연애를 하면서부터, 인 것 같다. 이 회피, 에 집중하게 된 것은. 그냥 하고 싶은 말도 있고 원하는 것도 있는데 대화 주제로 올리기가 껄끄러워서 늘 그 주제를 피하는 나를 보며 답답하기도 했고 조금 더 스스로를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 더 잘 사랑하고 싶었다. 이런 마음으로 시작한 또 한 번의 파고들기. 전부터 느끼고는 있었다. 나의 회피 기질을. 나의 회피 기질은 아주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어린 시절 겪었던 일들로부터 얻은 것이다. 그 당시 내가 삶을 유지할 수 있었던 아주 효과적인 방식. '회피'와 '외면' 내가 선택한 가장 첫 번째 회피 수단, '잊어 버리기' 예를 들어 그 날 아빠한테 맞았다든지 엄마와 아빠가 싸웠다든지 하는 일이 있으면 집을 나서는 순간 새까맣게 잊었다. 그래야 나는 기분 좋은 마음으로 나의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야 나는 적어도 스스로의 일상을 유지해나갈 수 있었으니까. 언제나 기분 나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도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었고 웃고 싶었고 즐겁고 싶었다. 그래서 잊었다. 이 과정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한 '억압'과 '외면' 내면에서 들끓던 안 좋은 감정들을 억눌렀다. 표출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어린 나에게 부모는 컸다. 애꿎은 대상에게 표출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좋은 인상을 주어 사회에 잘 녹아들기 위해 나는 부정적 감정들을 억눌렀다. 그리고 부정적 감정들을 느끼는 정도를 줄이기 위해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상황들, 조건들을 외면했다. 침대에 누워 거실에서 들려오는 부모가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 '듣지 말자, 신경쓰지 말자, 내 일 아니다.' 잘 되지 않을 때면 귀를 막든지 이어폰을 꼽고 잠들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해서 나는 스스로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나갔다. 이 외면이 가장 쓸모 있었던 순간은 아버지와 성관계를 맺을 때였다. 아버지가 내 위에 올라타서 삽입을 한 뒤 열심히 피스톤질을 할 때면 나는 누워서 천장을 올려다보며 '나는 지금 내가 아니다' 라든지 '지금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라든지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다' 같은 말들을 끊임없이 되뇌곤 했다. 아니면 숫자를 세거나 다른 생각을 하든지. 그것은 그 상황을 어서 흘려보내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고 내 몸이 오르가즘을 느끼는 그 혐오스러운 사태를 막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회피는 나에게 '소중' 했다. . .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회피는 나의 아버지가 자주 사용하는 대처법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말싸움이 붙을 때면 아버지는 철저히 회피, 로 일관 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머니는 고집스럽게 그 문제에 대해 물고 늘어졌다. 왜 그랬느냐, 어쩔 것이냐, 왜 대답이 없느냐, 아버지는 일단 사과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미안하면 다냐며 계속해서 싸움을 이어나갔다. 그러면 아버지는 뭐랄까, 그 주제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항상 주변부를 빙빙 돌며 회피하기만 했다. 가령 일요일 아침 엄마가 어젯밤 새벽 늦게 귀가한 아버지의 행동에 대해 추궁을 하면 아버지는 대충 사과를 하다가 그래도 어머니의 화가 가라앉지 않으면 '날 좋은 일요일 아침에 집안 분위기를 꼭 이렇게 만들어야겠느냐' 며 화를 내곤 했다. 도대체 오늘이 날 좋은 일요일인 것과 어젯밤 늦게 들어온 것에 대한 추궁이 어떤 상관이 있는 건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쯤 되면 엄마도 별 수 없이 제풀에 꺾이곤 했다. 상대가 장으로 들어오지 않고 장외에 머물러 있으니 뭘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자신이 불리하거나 이야기하기 거북한 주제에 임하는 자세는 일관된 '외면'과 '회피'였다. 변명하거나 대충 사과하거나 대답하지 않거나 성질 내거나. 나는 그 방식 그대로를 모방하고 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나는 아버지에게 이야기할 때만큼은 말을 가렸다. 아버지의 반응을 예측한 뒤 안전 범위 내에 있는 이야기만 했다. 그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든지 뭐라고 한 마디 할 것 같은 주제는 입에 담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반응을 예측하고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반응이 돌아올 것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고 삼켜 버린다. - 이것이 나의 회피의 본질. 아버지로부터의 회피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회피 가 공존한다. 그동안 생의 많은 문제들을 회피해왔다. 그리고 언제나 나의 상황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간 다음 막다른 그 길목에서 문제가 펑 터졌을 때 나는 늘 가장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 간접 피해를 입은 주변 사람들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지켜보곤 했다. 문제가 해결된 다음 주변이 깨끗해지면 나는 다시 돌아와 웅크려 앉았다. . . 나는 오늘 엄마와의 대화에서 조금 '덜' 도망쳤고 조금 '덜' 성질냈다. 차분히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발끈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나를 표현하기 위해. 기분이 좋았다. 어제, 시골에 내려가서 느낀 점이 있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엄마와 다시 관계맺기'라는 것이었다. 나를 재정비하려고 노력하고 생활 전반을 바꾸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던 나, 하지만 왠지 엄마와의 관계만 다시 정비해도 아주 많은 것들이 바뀔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 . 엄마와 친해지고 싶다. 엄마를 조금 더 이해하고 싶다. 그리고 엄마와 지금과는 다르게 지내고 싶다. 그러면 내 생의 많은 것들이 좋아질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런 직감이 든다. 그래서 나의 이번 주제의 숙제는 '엄마와 친해지기' 이다. . . 마치 다이빙 같은 것 같다. 물 속이 보이지 않아 처음에는 아주 무섭지만 처음의 벽만 넘어서면 그 다음부터는 아주 쉬운 그 다이빙처럼 낯섦, 그리고 껄끄러움 왠지 모르는 두려움만 잘 넘어서면 그 다음부터는 술술 잘 풀릴 거야.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직시하고 그것의 실체를 환상없이 파악하고 두려움은 결국 내 마음이 빚어낸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남아 있는 두려움은 그것을 넘어섰을 때 내가 맞이하게 될 그것의 참모습에 대한 기대로 극복한다면 마침내 그것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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