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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하나
 태풍은 지나갔으니   cinq.
조회: 2472 , 2015-05-11 19:37

요즘은 뭔가 생활이 단조로운 것 같은 느낌이다.
절박하거나 자극적이거나 스트레스 받는 일도 없다.
바쁘지도 않고, 여유롭고.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하루하루를 차근차근 살아나가니까
뭔가 심심하다.

더 큰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고
더 어렵고 힘든 일이 왜 없지?
이런 의문이 든다.

지금으로서는 그냥,
런닝머신에서 내려오면 원래 좀 걷는 느낌이 드는 거라고.
조금 있으면 적응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뭔가 극적인 일들이 있어왔던 지난 시간들이 
대충 정리가 되고,
이제 진짜 내 일상에는 별 일이 없다.

그냥 학교에 가고,
과제를 하고
친구를 만나고
동아리 활동을 한다.

고민할 일도 별로 없다.
교환학생 지원할 준비나 차근차근 하고 있는 중이다.
향후 3년 동안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3년 동안은 그냥 별 고민 없이
그렇게 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그러려니 왜 이렇게 허전한지.
늘 앞이 보이지 않았었는데,
지금 이 결정이 내 인생을 어떻게 끌고 갈지,
나를 살게 할 지 죽게 할 지
아무 해도 없을 지 아니면 죽을 만큼 힘들 지
사이에서 고민하던 연속이었는데.

지금은 하나의 선택이 인생 전체를 좌우하지는 않는다는 걸
이미 알아서인지,
아니면 그 정도 무게의 선택을 할 일이 없어서인지,
그냥 무료하다.

무료하다는 게 불행하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짜릿함에 대한 갈증이랄까.



.
.


뭐라니,
제발 좀 여유롭게 
아무 걱정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게 
바로 몇 달 전이면서.

혼자 집에 있어도
얼마든지 과제를 할 수 있고
빗소리를 들어도 기분이 나빠지기는 커녕
세상이 씻겨내려가는 시원함을 느끼고
고민이라고는
친구가 왜 카톡에 답장을 안 하지
밖에 없는 지금의 일상을

그렇게 바라고 바라왔으면서.



.
.


그냥 주변이 차분해지면서
내 존재감이 흐릿해지는 것 같아
불안해지는 것 같다.

지난 날 동안 적어도 나는 태풍이었는데,
이제는 산들바람이 되어
사람들은 내가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게 된 느낌.

하지만 나는 산들바람의 삶이 더 좋아.
태풍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
.

그냥,
요즘 룸메 언니가 내가 미운 건지
아니면 새로 구한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때문인 건지
살갑게 대해주지도 않고
집에 오면 쓰러지듯 누워서 인사도 제대로 안 해서
기분이 별로 좋질 않은 것 같다.

내가 마음에 안 드나,
이런 생각도 들고.
전에는 되게 나한테 잘해줬는데
지금은 되게 차갑고 쌀쌀맞아서
서글프다.

가장 친한 친구도 자꾸 카카오톡을 씹어서 짜증이 난다.
한 두번이라야지,
보내 놓으면 하루가 다 지나서야 읽고,
읽고도 답장하지 않기 일쑤고.

바쁜가 싶었는데 일주일 넘게 계속 그런다.
며칠 안 보내다가 조금 전에 보냈는데
한 번 답장하더니 또 읽씹.

으 
이래서 카카오톡은 싫다.
얼굴이 보여야 말이지.

이번 주에는 과외도 안 한다는데-
남자친구랑은 잘만 놀러다니고
같이 찍은 사진도 페이스북에 올리고 그러면서
내 카톡에는 왜 답장을 안 하는 지 모르겠다.
너무너무너무너무 섭섭하다.


사실 지금 기분이 좀 가라 앉은 건
아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섭섭함 때문인 것 같다.

(와, 인정했어!)



.
.



나한테 좀 더 살갑게 대해줬음 좋겠는데:(
자꾸만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하게 되는 게 별로 좋지 않다.

그래서 이런 사소한 문제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시절이 생각나나보다.
하지만 이 고민들을 뒤로 미룸으로 인해서 내가 잃은 것을 생각해야지.

소통,
관계.

섭섭함으로부터 피어나는 상대방에 대한 바람,
나 또한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바랄 수 있다는 사실.
관계는 만들어나가는 것이라는 사실! 

그래,
이제 보이는 노력을 조금 해봐야겠다.

친구를 만드는 노력
친구와의 사이를 다지는 노력
남자친구를 만드는 노력 등등.

지금까지는 그냥 되는 대로 살아왔어.
운 좋게도 주변 사람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늘 외로웠던 건,
관계라는 걸 가꾸지 못해서
늘 텃밭이 말라 있었기 때문일 거야.



텃밭을 파랗게 가꿔볼까,
태풍은 지나갔으니.

바른생활   15.05.12

그림이 그려지게하는 문장이네요~ 나중에 조용할때 다시 읽어야지^^ 지금은 출근중 버스안^^

李하나   15.05.19

그림이 그려지는 문장이라, 좋은 말씀 감사해요:-) 오늘은 이미 퇴근하셨겠지만, 내일도 출근하신다면 출근 길 화이팅이에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