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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일기글입니다.
 너는 내가 사랑 하는 아이  
조회: 584 , 2019-09-26 01:43

학원일을 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아이가 있다.


공부를 하다가 드러눕는 아이.

문제 풀다가 짜증내는 아이.

웃고있는데 뒤에서 내 욕하는 아이.


솔직히 나는 잘해줬다고 생각했는데.

저 뒤켠에서 내가 안 보일때 내 욕을하고 무언가를 발로차고 던지는것을 보았을때.

나는 무척..충격을 받았다. 그날 하루는 사실 멘붕이어서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옛날의 나였으면 너 지금 뭐하는 거냐고 했을거다.

그리고 내 자존심이 땅바닥으로 곧두박질 쳤을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학원이라는 곳 자체가 아이러니다.

그들은 공부를 하기위해서 돈을 내고 이곳에 왔다.

그러면 나는 무언가를 내어주고 공부를 시켜야한다.

하지만. 우리는 딜을 할수도 있다.


아이가 이래저래 말하면, 나는 그걸 들어보고 어느정도 타협도 할수 있다.

근데 요즘 애들은 터무니 없는 부탁을 꺼내지도 않을뿐더러, 타협자체를 시도하지 않는다.

(슬그머니 자기 의사를 돌려 표현하는 아이도 간혹 있기는 하지만 드물다.)

그러면서 어디선가 그런 폭발이 일어나는거다.


나는 그들의 생각을 알수가 없다.


그 날 이후. 나는 아이가 괜찮다고 말을 해도 그 괜찮다가 정말 괜찮은 것인지.

웃고 있어도, 그게 진심으로 웃는 것인지.  도통 알수없게 되어버렸다.

뭔가 표정을 보고 읽고 판단을 하는데 있어 인식 불구자가 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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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아이들을 사랑한다.

내가 해줄수 있는 것은 없는데, 그냥 열심히 준비하고 내가 줄수 있는 도움을 최대한 주는거.


엊그제는 '다치게 하다'라는 단어가 나왔을때.

이 단어는 언제 썼으면 좋겠냐고 .이런적 있냐고.

꼬맹이 S에게 물었다.


S는 어제 그런 경험을 했다고 했다.

열심히 일기를 썼는데, 틀린 글자도 없었는데.

엄마가 글자가 더럽다고 보는 앞에서 일기를 찢어버렸다고 했다.

'엄마가 제 마음을 다치게 했어요.'


분명 해맑게 웃으면서 한 이야기 였는데.

마음이 쨘해져서 잠시 굳어버린 내게. 아이는


선생님! 저 빨리 가야하니까 우리 얼른하고 마쳐요! 하고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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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번째 아이는 무얼할때마다 한숨을 푹푹 쉰다.

모르겠다고 볼멘소리도 하고 앙칼진 목소리로 안하겠다고도 한다.

'저는 그냥 포기할래요.'


사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때는 앞으로 쟤를 어떻게 학습시키나 막막했다.


그리고 두번째 세번째가 되었을때는 나도 내 안에서 그 반응에 화가 치밀었다.

그렇다고 그것들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시작도 안하려고 하는 자세가 너무 하지 않은가.


어느 날, 불현듯 맘에 어떤것이 느껴졌다.


아아, 저 아이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구나.

그래서 다른 애들이 쉽게 손대는 무언가에도 쉽게 손댈수가 없었다는 느낌.

( 아마도 집에서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많이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 날은 그 아이를 토닥이며...반 이상 틀려도 괜찮다고.

그럼 다시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해주었다.

그 아이는 조금은 차분해진 자세로 쓰던 것을 이어 나갔다.


내일이면 또 오늘과 같이 이런 씨름을 계속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근데, 식물도 하루하루 물을 주고 예쁘다 예쁘다 하면 변화하는거 처럼

아이들도 천천히 자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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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반응으로 내 존재를 인식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그들을 반사해 주는 거울일뿐다.

( 이것은 비단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


누군가는 나를 보고 친근함을.

또 누군가는 나를 보고 하찮음을.

또 누군가는 나를 보고 시덥잖음을.

또 다른 누군가는 나를 보고 고귀함을 본다.


나를 통해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이다.



나는 상처를 받았었지만.


다시 한 번. 사랑할거다.

내 사랑은 너희들의 반응에 응당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므로.


다시 한 번 미소 지을 것이고.

다시 한 번 따뜻한 인사와 위로를 건넬것이고.

다시 한 번 토닥이며 필요한 무언가를 건넬거야.



**

뭐가 뭔지 모르게 흘러가는 이곳에서.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음을 느낀다.


어젠 한 아이가 자기가 만든 김밥이라고.

뭉툭하게 생긴 퉁퉁 불은 꼬마 김밥을 만들어와 내게 건냈다.


첨엔 자랑을 하면서 나중에 먹을거라고 했는데.

선생님 드실래요? 라고 했다.

( 섣불리 감동을 하기 전.. 2가지 가능성이 있다.

1. 잔반처리

2. 선생님 주려고 가져왔는데 수줍어서 자기가 먹는다 해놓고, 나중에 진심 꺼내기)


이유야 어찌됐건 나는 좀. 감동했다. 


아이가 돌아가고. 2시간 후.

좀 오버스런 일일지도 모르나.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만든거냐고.

정말 맛있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너무 고맙다고.

페니   19.09.28

제가 대신 고마워요.

프러시안블루   19.09.28

일터에서의 이런 일기 참 좋아요.
섣불리 감동하기 전의 2번 (선생님 주려고~)의 세심함에 저도 감동받고 갑니다.

정은빈   19.09.29

제 마음도 같이 따뜻해지네요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선생님들...너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