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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하나
 미쳤나보다   neuf.
조회: 1593 , 2020-11-30 16:58


최근 들어 내가 미쳤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까지는 그냥 인생 흘러가는대로 살면 되지, 라고 생각했었다.

내 머릿속에만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 내 인생을 찬찬히 돌아보니

정신적인 문제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현실적인 부분을 충분히 챙기지 않고 있었다.


대학에 진학하고 여러 대외 활동들을 하고 심리 치료를 한 것은 좋았고

영어 실력과 공인 어학 성적을 따놓은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졸업 후 진로를 찾겠다며 방황하다가 제대로 한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나는 대학을 굉장히 오래 다녔다.

2011년에 입학해서 18년에 졸업했으니, 27살에 졸업한 것이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그 흔한 자격증 딴 것도 없고, 어학 성적도 없었던 나는

2018년 상반기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토익 공부를 했다.

하반기에 토익 980점을 땄고, 열심히 공부해서 공기업을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NCS 공부를 하다보니 이건 도저히 내 길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19년 상반기에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를 준비했다.

그렇게 캐나다 워홀 6개월을 다녀오고, 2020년이 되었다.


2020년에는 심리학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고 국내에서 일을 구했다.

코로나로 인해 구직이 늦어서 4월 중순이 되어서 파트타임 영어 강사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0월달에 대학원 입시에 집중한다며 일을 그만두고 현재는 무직이다.

졸업 후 3년이 다 되어가는데 제대로 된 곳에서 4대 보험 받으면서 일한 적이 없는 것이다.


늘 나름대로 뭔가를 고민한다고 하면서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답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이면 서른 살인데 적금, 보험, 청약도 없고

전 재산은 1~2백 정도밖에 없다.

학자금 빚만 1천만원 정도다.


왜 나는 이렇게 현실감각이 없을까?

늘 열심히 산다고 하면서 이상만 생각하면서 사는 거 아닐까?


나의 20대를 너무 잘못 보냈다는 생각이 계속 떠올라 나를 괴롭힌다.

물론 나름대로 열심히 보냈고, 최선을 다했지만,

막상 사회에 나와보니 그런 경험들이 쓰일만한 곳이 별로 없어서 너무 무섭다.


내가 공부한 것들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 심리학이라는 진로를 택했는데

잘 한 결정인지도 모르겠다.

면접에서 졸업 하고 뭐 하셨어요, 라고 하면 뭐라고 해야 하지?

그냥 공부 하거나 아르바이트 했어요, 라고 해야 하나.


나처럼 이렇게 우왕좌왕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래도 다들 뭔가를 꾸준히는 한 것 같은데.

나는 왜 자꾸 하다 그만두고, 하다 그만두는 지 모르겠다.


무섭다.

다들 내가 잘 살 거라고 해주었는데,

잘 될 거라고 해주었는데 그러지 못할 까봐.


나는 과연 잘 살 수 있을까?


B   20.11.30

잘 될거예요.이제껏 이겨낸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생각보다 강했고 이루어낸 것도 많을 거예요. 저도 전공과는 상관없는 일을 하지만 제 결정에 후회하지는 않아요. 나름대로 심사숙고해서 제가 결정하고 이루어 낸 선택이라서요. 목표를 결정했으면 이제 돌아보지 말고 온 마음으로 집중하면 이루어질 거예요.고고!

李하나   20.12.03

목표를 결정했으면 돌아보지 말고 온 마음으로 집중한다,정말 좋은 말씀 같아요! 힘이 되는 말씀 감사합니다. 힘내볼게요!!

Jeong P   20.12.15

저도 이제 겨우 30대초반이지만, 지난 인생을 돌아보면 20대 후반이 가장 힘들고 고민이 많았습니다.
20대 중반까진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학생이라는 이유로 용서가 되었는데, 그때의 선택으로 인한 책임이라는 것이 어느순간 갑자기 내 앞에 다가와있죠... 비단 하나씨가 아니어도 모든 청년들이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고, 지난날을 아쉬워합니다.
그리고 이런 초조하고 불안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앞으로의 선택을 고민하기보다 지난 선택을 후회하는 쪽으로 마음의 에너지를 쓰게 되더라고요. 현재의 의사결정이 그저 막막하고 어렵기만 하다보니, 지금의 상황을 만든 과거의 나에게 책임을 돌림으로써 현재를 회피하고자 하는 심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그것은 현재시점에서 '그때 그렇게 했으면 지금 잘 되었을것이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일종의 사후확신편향일 뿐, 하나씨도 분명 그때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달려왔던 것이란 걸 알아주셨음 해요. 이미 지난 과거를 돌아보며 자책하는 것은, 자존감만 떨어뜨리면서 앞으로는 나아가지 못하게 할 뿐이니 얼른 벗어던지셨음 좋겠어요(제 실제 경험담이니 충고라기보단 조언이라고 생각하셨음 좋겠네요ㅎㅎ...)
더불어 생각의 정리&제대로된 계획수립이 한번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내가 워크와 라이프중 어떤 것을 중시하는 성향인지부터 시작해서, 어떤 곳에서 일을 하고 싶고 그곳에 취직하기 위해선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 그리고 준비를 하기 위해 어떻게 계획을 짜야할지를 한번 날잡아서 제대로 정리해보시기 바래요. 막막하게만 보이는 앞길에 어느정도 윤곽이 보이지 않을까 합니다.

李하나   20.12.21

우와, 너무나 날카로운 지적과 경험에서 비롯한 따뜻한 조언 정말 감사드려요♡ 구구절절 맞는 말씀이네요. 정말, 과거의 나를 계속 탓하는 게 현재를 회피하고자 하는 심리라는 게 정확한 것 같네요. 얼른 벗어던지고 앞으로 나아가야겠습니다.
생각의 정리와 제대로 된 계획 수립, 꼭 해봐야겠어요. 워크와 라이프 중 무엇을 중시하느냐,,이건 무슨 일을 하는 지가 중요하냐, 아니면 일은 돈을 버는 수단이고 그 외의 여가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시겠지요? 저는 우선 전자, 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에 취직하고 싶고, 그곳에 취직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실질적인 계획을 한 번 수립해보아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정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