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C버전 구독관리
공개일기 한줄일기 내일기장
李하나
 내 마음에 평화를 주는 용서   neuf.
조회: 339 , 2023-10-10 16:15


용서는 나에게 늘 힘든 일이었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세상에 둘이나 있었고
그들을 용서하는 건 나를 포기하는 것 같아서
나는 누구도 자칫 용서하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
거기에는 나 자신도 포함이었다.
누군가 잘못한 것을 용서한다면
부모가 저지른 죄도 용서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용서와 합리화의 차이가 무엇인가?
궁금해하기도 했다.
요새들어 조금씩 용서를 연습하기 시작하면서
그 차이를 느껴가고 있다.

먼저 나를 용서하고 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는 나를 가혹하게도 비난하고 있었다.
때로 그것은 엄마의 목소리이기도 했고
아빠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뼛속까지 파고든 나를 향한 그들의 분노와 비난.

내가 너무나 하찮고 별로라고 느껴질 때마다
자기 비난의 목소리를 글로 적는다.
그러면 정말 나는 나 자신을 맹렬히도 깎아내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렇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나를 대하고 있었다니.
그러니 이런 자기 비난이 투사되어 다른 사람의 시선이 무서울 수밖에.

우선 나를 먼저 용서하기로 했다.
사소한 실수나 완벽하지 못한 처사들을 용서했다.
'그럴 수도 있지', '잘했어' 등의 말로 위로를 하기도 하고.
내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나의 의도를 알아주기도 하고.
완벽하진 않았지만 내가 한 행동의 의미를 찾아주기도 하고.
균형을 잡아주기도 하고.
전 남자친구가 늘 해줬던 괜찮다는 말이 도움이 되었다.
그는 내가 불안해할 때마다 좋은 말로 위로를 해줬다.
얼마 안 되는 시간에도 그 목소리가 내면화가 되었는지
가끔 나를 변호할 때마다 그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감사한 부분이다.

타인에게도 조금씩 적용해보고 있다.
포인트는 상담 선생님이 늘 말씀하셨던,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doing을 싫어하되 being을 싫어하지 말라.
그 사람의 행동은 싫어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싫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용서는 존재에 대한 것인 것 같다.
잘못된 행동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그렇게 되지도 않고.
다만 상대에 대한 비난은 접을 수록 내 마음의 평화에 도움이 된다.
사람에 대한 증오는 나를 갉아먹는다.

오늘 아침,
나와 만나기로 했던 누군가가 늦잠을 자서 만나지 못했다.
어젯밤부터 연락도 잘 받지 않고
나에게 보내줘야 할 것도 보내주지 않아서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불안불안했는데 결국 늦잠을 자버리고 만 것이다.
물론 그가 나에게 호의로 해주는 것이라 감사한 마음이 컸지만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다.

그 사람이 별로라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불성실할 수가 있지?
다른 사람의 시간을 함부로 여기는 사람인 거야!
내 시간을 존중하지 않았어!

그럴 수록 점점 미워지고
말도 삐죽하게 나갔다.

나에게 해주던 것처럼 상대도 용서해보기로 했다.
그를 향한 비난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를 변호해주었다.
그럴 수도 있지, 살다보면 늦잠을 잘 수도 있지.
덕분에 나는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했잖아.
여러 번 늦은 것도 아니고
이번이 처음이니까.
어제도 나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아서가 아니라 무슨 사정이 있었을 거야.
물론 반복된다면 나의 시간은 소중하니까
나는 이 약속에 참여하지 않겠어~
하지만 이 한 번으로 내가 그 사람을 안 좋게 생각해서
참여하지 않으면 나 역시도 좋은 기회를 잃는 걸.
나에게 미안하다고 충분히 사과도 했으니까 좋게 생각하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상대방의 상황도 조금 더 눈에 들어오는 것 같고.
나를 지키면서도 상대를 비난하지 않기.

용서는 나를 위한 것이다.
내 마음의 불안을 가라앉히고
나를 삐죽삐죽 찌르는 가시를 뭉툭하게 만들기 위해.

나를 용서하고 타인을 용서하기.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기.


엄마에게도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엄마는 나를 보호해주지 못했고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엄마는 열 달을 품어 나를 낳아주었고
갓태어난 나를 돌보아 길러주었다.
모자라긴 하지만 나를 버리지 않고 키웠고
지금도 나름대로 나를 챙겨주려고 하고 있다.
엄마의 인생에서 나와 동생을 위해 희생한 부분도 클 것이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나의 인생의 한 부분을 희생한 적이 있는가? 없다.
그것만큼은 감사하다.

나는 엄마의 죄를 미워할 것이다.
엄마를 비난하지 않고.
이건 동정이나 합리화하고는 느낌이 조금 다른 것 같다.
being으로 doing을 퉁치는 게 아니다.
나를 낳아줬으니 어떤 잘못도 묻어야 해, 가 아니라.
나를 낳아준 것은 감사하다. 그러나 잘못은 잘못이다, 라고
being과 doing을 따로 보는 것이다.

나름대로 이 곳 상황이 정리되는대로
엄마와 한 번 상담을 받자고 요청해볼 생각이다.

엄마는 어떤 사정으로 나를 보호해주지 않았는지.
지금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내가 불쌍은 했는지.
들어봐야지.
물론 내가 그러한 행동으로 인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금도 엄마를 대하는 마음이 얼마나 편치 않은지도 전할 것이다.
엄마가 한 행동들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어떻게 행동했어야 하는지도. 모두모두 말할 것이다.

다행히 채용 시즌이 되기 전에 몇 달 여유 시간이 남는다.
취업을 하면 나는 이제 훨훨 날아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
즐겁게. 반짝반짝하게.

그러니까 묵은 감정은 풀고 자유로워져야지.
나 자신에게 평화를 선물하자.
새로 태어날 나를 기대하며.

기쁘미   23.10.11

carol   23.11.02

즐겁고 반짝반짝한 내일을 응원합니다:)

carol   23.11.02

Tout ira bien:)

Jo   23.11.25

아픔을 보듬으며 진정한 나를 찾고 계시는 듯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