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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아레
 "Do what you love. Love what you do."   공개
조회: 4914 , 2009-10-27 15:01
"Do what you love.  Love what you do."
 -  어느 TV  광고 카피 , 광고 상품은 기억이 나지 않는 -

언젠가 어느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녀가 하고있는 일을 이렇게 부르는 걸 당사자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무명에 가까운지 몰라도 언젠가 꼭 좋은 작가가 될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감수성과 상상력이 풍부하고, 솔직담백하면서도 언제나 맛깔스러운
그녀의 일기장의 글들을 읽는 건 내겐 상당히 즐거운 경험이었다.

기억에 남는 말들 중에, 정확히 옮길 수는 없지만 이런 말이 있었다.

나는 예술가다. 글을 쓰는 일을 통해 한푼도 돈벌이를 못하고 있다고 해도
나만이 쓸 수 있는 나만의 글을 단 몇 줄이라도 쓰고 있는 한 나는 예술가인 것이다.

제대로 옮기질 못해서 인용부호도 못붙이겠다.
요는, 이런 식의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 규명이 나에겐 퍽 인상적이었고,
너무 거창하게만 보여 나로선 아예 시도도 안해봤을 일이건만,
그러니 당신도 한번 부담스러워 말고 자신이 뭐하는 사람인지 자문해보고 답도 해보라고  
넌즈시 권하는 말인 양 들렸던 것이다.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듯,
특별히 잘하는 일이나 재능 같은 게 없다.
그럼 남다른 끈기나 노력이 있냐 하면, 그것도 턱없이 부족하다.
자신감이나 의욕... 역시 상실한지 오래다. 몇번의 실패가 있었다는 게 핑계라면 핑계랄까.

나같은 사람에겐 그래서 좋아하는 일,
그러니까 별다른 재능이 없어도, 남다른 끈기가 없어도,
그저 밥을 먹듯이 물려하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이 제격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때가 되면 별생각없이 꾸역꾸역 일망정 뭔가를 쳐넣어도
별탈없이 속에서 받아내 줄 수 있는 그런 일 말이다.

그런 일이 하나... 있긴 하다.
십년 넘게 흥미를 잃지 않고, 그런대로 꾸준히 해오고 있는 일.
무엇 하나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분석하고 가설을 세우고 검증을 하고 나름대로 이론을 세우는 일.

글쓰는 소질이 없어서 거기서 난관에 봉착할 게 뻔하긴 하지만, 언젠가  그 결과물들을 찬찬히
글로 옮겨 나중에 작은 책이라도 엮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요즘들어 좀 난데없지만
하게된 것도 사실이다.

그럴 가망 없이 단지 나만의 사적인 기록으로 남는다 해도 별로 아쉽지 않을 것 같다.
어쨌건 내게도 나만이 할 수 있는 나의 일이 있는 것이고,
나의 그것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분석하고 설명하고 기록하고 있는 한,
내 보잘 것 없는 기록이 빛을 보게 되건 말건 그런 것과도 아무런 상관없이
나는 과학자인 것이다.

(나의 연구대상은 언어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영어라는 언어에 국한해서.)

프러시안블루_Opened   09.10.28

매우 통통튀는 글을 쓴다고 생각되는 김영하의 산문을 읽으며
같은 책에 실린 산문의 수준이 왜 그렇게 들쑥날쑥 한지 궁금했었는데요
제가 내린 결론은 충분히 다듬을 시간이 있었느냐? 없었느냐?의 차이 같더라구요.

심지어 고종석씨 같은분도,
영어에 관한 2권의 책은 그저 so so한 수준이었습니다.

진심인데,
티아레님께서는
이미 언어에 대한 감수성과 재능이 충분하세요.

영어에 관한 글을 쓰신다면
티아레님이 훨씬 더 좋은 글을 쓰실 수 있을겁니다.
저도 읽을 수 있도록 쉬운 내용으로..ㅎㅎㅎ

티아레   09.10.28

몰랐어요, 고종석씨가 영어에 관한 책도 썼군요.
'언어의 달인'이라더니,
우리말, 프랑스어, 영어, 미치지 않는 데가 없나보네요.

이글 공개하면서도 곧바로 후회하지 싶었는데,
벌써 주눅들어 버렸어요ㅎㅎ

평소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아니고,
글은 더더욱 원체 써보질 않아서요.
사실 일기조차도 궁싯거리며 겨우 쓰고 있는 형편이고,
애써 써놓은 글도 어색하고 조리에 맞지 않아 보일 때가 많아서
"이거 모국어 맞아?", 이런 말이 절로 튀어나올 지경이거든요.

공짜가 어디 있을려구요ㅎㅎ
갈길이 너무 멀고, 사실 그다지 가망조차 없다는 것도 아는데
그냥 그런 궁리라도 하고 있으면,
마음에 조그만 빛이 하나 켜지면서 따스해진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실은요, 별로 서두를 생각도 없어요.
어쩌면 저는 그저 이 느낌이 좋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좀 우습죠..

격려해주셔서 고마워요.
보답해드릴 자신은 없지만요.

프러시안블루   09.10.28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글쟁이는 고종석씨인데요..
어떤 문학평론가도 우리 말을 그처럼 아름답고 정치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저는 고종석씨의 산문이 교과서에 실려야된다고 생각합니다.